아시아는 세계다 , 왕후이 - 4장 류큐: 전재의 기억, 사회운동, 그리고 역사해석
아시아는 세계다
양장본
4장
류큐:
전재의
기억,
사회운동,
그리고
역사해석
http://www.nomadist.org/s104/SeminarBB2/21579
1. 홋카이도에서
류큐까지
> 홋카이도의
지정학적
관계:
러시아-일본-중국-서양
세계
사이의
관계.
러일전쟁이후
본격화된
일본의
홋카이도
식민화는
“일본의
제국주의적
성격의…뚜렷한
팽창”을
시사.
이
관계는
“서양
중심의
현대
세계에
대한
서술에서
뒷전으로
밀려났지만
정말로
사라질
수는
없을
것.”
> 히로시마:
“핵폭발의
상처가
너무
크기
때문에
그
배경(청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은
희석됨.”
단순화된
면이
다분.
2. 류큐의
전쟁기억
> “류큐의
전쟁기억은
히로시마보다
훨씬
복잡하다.”:
(ㄱ)
타국
병사,
일본
병사,
그리고
민간인
추모비의
공존.
(ㄴ)
류쿠인의
집단
자살.
> 핵심문제의식:
“류큐인은
패전국
일본의
일부인가
아니면
식민지인인가?”,
“류큐인은
일본국민인가
아니면
또다른
신분인가?”
—후에
왕후이가
시사할
공법과
민족주의로
재편되는
세계질서—주권
개념
아래의
“내외구분”으로
대변되는—와
기존
중화주의적
조공체제—“친소원근”—와
관련해서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킬
질문들.
3. 전쟁,
냉전,
그리고
류큐
정체성의
정치성
> 기존의
타
민족주의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
탈정치적
맥락을
고수하는
반면,
류큐의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필연적으로—태평양전쟁에
대한
기억을
희석시킨
히로시마와
달리,
그
전쟁에
대한
기억을
불러와야
하기
때문에—정치적이다:
“추상적인
평화주의의
입장이
아닌,
역사적
입장에서
정치적인
시야를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왕후이가
거슬려했던,
히로시마로
대변되는
일본
본토의
탈정치성과는
궤를
달리한다.
(전후
일본
예술도
이러한
추상적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데
일조한다고
생각됨.
아주
뻔한
예를
들자면,
오노
요코)
> “류큐식
질문”은
“제국주의가
만들어낸
민족주의
논리의
복제”를
뛰어넘는
무언가를
시사한다.
4. 두
가지의
정체성
정치,
“미국성”
> 타이완과
류큐의
차이:
태평양전쟁에서
둘이
차지한
지위의
차이.
타이완은
미국과
협조한
국민당
통치
아래,
승리자
입장을
점유한
반면,
류큐는
“피점령지”였음.
> “미국성”
: 민주주의의
냉전화.
타이완의
정체성
정치(독립운동)는
미국성이
강함.
(구체적으로
정의해
보는
게
필요할
듯
함.
예를
들어,
“오늘도
중국
대륙에서
발견할
수
있는
‘냉전화한
민주주의’의
그림자”가
무엇인지?
중국의
정치적
가치란
정확히
어떤
것?)
> 류큐
사회운동은
“반미국성”을
띈다.
(왕후이는
여기서
순환적인
단어를
사용함.
어쨌든
미국성이라는
게
뭔지
구체적으로
알
수
없음.
류큐의
“반미국성”에
대해서도
구체적이지
못함;
예를
들어
그들의
반미국성이란
중국의
사회주의를
상상하고
그들의
실천과
맞물리도록
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렇다는
것인지?
)
> 또다른
면에서
미군기지
반대운동을
통한
류큐
사회운동의
반미국성.
> 류큐의
“구조의
낡음”:2008-9년에
냉전
(미국),
20세기적
제국주의
(일본)의
유산이
그대로
맞물려
있다는
점을
의미함.
(하지만
이런
점은
한국도
마찬가지
아닌가?
왕후의의
서술방식이
류큐의
특이성을
잘
살리고
있지
않은거
같아
조금은
아쉬운
느낌.)
새로운
사회운동의
가능성과
“21세기
패권
구조가
가진
역사성”을
포착할
수
있게
한다.
즉,
“자본주의의
기초적인
구조—정치,
군사,
문화적
패권에
대한
의존—는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는
것.
5. 류큐
문제를
통해
전지구적
자본주의
꿰뚫어보기
> 류큐
문제가
“자본주의의
기초적인
구조”에
대해
시사하는
것은,
이것이
“군사적/국가적
패권”에
기반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류큐문제는
“동아시아적
문제”를
넘어,
“세계자본주의
전체의
발전,
제국주의의
발전이
이
지역에
집중되어
전개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6. 류큐
문제,
지역
관계
그리고
19-20세기
국제규칙의
거대한
변화
> 류큐
식민화/점령을
둘러싼
역사적
배경은
19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 이
시기
“국제규칙의
거대한
변화”
: 기존의
조공/번속
관계에서,
서구의
영향을
받고,
일본이
자신의
확장주의
전략으로
적극적으로
활용한
유럽
제국주의의
“국제법/공법”에
의거한
관계로의
전환.
> “친소원근”과
“내외구분”의
논리차이:
전자에서
내/외부는
매우
모호하고
유연한
반면,
후자에서는
내외가,
“주권국가”
개념이
명확함에
따라,
매우
칼같이
구분됨.
(예시를
든
설명
페이지
299-300, 혹은
7절에서의
중국과
일본사이의
타이완-류큐
분쟁)
7. 제국주의적
국제법의
최초
운용
> 일본이
국제법을
활용해
제국주의적
확장에
나선
가장
단적인
예로,
1871년
타이완/류큐
분쟁을
들고
있다.
청과
일본의
“입장”
차이는
위에서
언급한
국제
세계관
차이로
인해
발생.
(중국의
그것은
“다원적
법률,
정치체제”로,
일본은
“민족주의적
모델”로
대변된다.)
> 왕후이:
내가
자꾸
이
옛날
세계관을
끄집어
내는
이유는
그것이…”여전히
일종의
통치.지배제도이고…여러가지
지배와
전쟁도
일어났지만,
그
다양성과
통일성의
탄력적인
관계는
우리가
다시
생각해볼
만하”기
때문.
(303) 이러한
관점에서
다시
근대적
정치제도가
“다양성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결함을
갖고
있었음”을
보게
만들
수
있다.
> 서남전쟁
(1877; 사쓰마의
난)에서의
(사쓰마
사무라이
세력의)
영웅주의와
타이완
공격
(1871)에서
사용된
“만국공법”
정신은
매우
밀접하다.
때로는
이
“호걸적
요소”(영웅주의)가
진보적인
얼굴을
띄면서도—사쓰마의
난
같은
반정부
운동이나
자유
민권
운동같이—,
어쩔
때는
매우
“상반된”
것이
된다—정한론
혹은
타이완
정벌전과
같이.
(서남전쟁에서
사쓰마
세력의
맹주였던
사이고
다카모리는
정한론을
강하게
주장함)
> 국제법과
조공/책봉의
“형식”과
“현실”:
전자의
경우
“형식적인
평등과
기회
균등의
관점”이
“현실적인
불평등
관계를
합젖화하는
전제”로
작용한다.
후자의
경우
형식적
차별로
간주되기
때문에,
제국주의적
침입이
“해방”으로
간주될
수
있게
한다.
마치,
오늘날
“인권”이나
“민주주의”라는
개념이
제국주의적
침입이나
개입을
합리화하는
것과
같이.
8. 민족해방운동과
새로운
지역(국제관계)의
상상
> 국제법에
대한
역사적
평가/전통적
정치관계와
모델에
대한
재조명:
부정
재건
혹은
가치평가가
아닌,
새로운
관계망의
상상을
위하여
실시되어야
함.
“통일과
분열의
관계는
모두
[근대
민족주의의
틀]에서
다루어야
하지만
다른
역사적인
전통이
존재하는지의
문제는
현대
세계에
맞는
새로운
관계를
구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가?”
(312)
> 류큐야말로
이러한
틀의
불충분성을
증명하는
케이스.
“민족국가
논리로
보면,
류큐
역시
일본에
의한
인정과
일본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두
가지
선택
사이에서
배회할
수
밖에
없음.”
(314)
> “전통적
관계를
재해석함으로써
우리가
몸담고
있는
제도적인
틀과
그
가치를
성찰하고
비판하는
시야
형성”이
목적. (313)
> 중국이
“주된
탈냉전
세력”?
진짜?
9. 냉전의
조짐:
카이로회담과
제2차
세계대전
종결
후
류큐의
지위
> 냉전시대의
류큐의
지위를
알기
위해서는
카이로회담과
그의
정치적
배경의
이해가
필수.
왕후이는
장제스
일기와
기타
외교사료를
들어
분석.
> 재밌는
점:
민족국가
시스템의
관점에서
봤을
때,
중국에게
있어
류큐와
타이완(+티벳/홍콩/주룽)은
다르지만,
류큐와
조선은
비슷하다.
> 그럼
왜
중국/미국의
류큐
공동관리가
중국의
단독관리보타
타당한가?
왕후이에
따르면,
이는
미국과
현실정치적
빅딜을
해야했기
때문.
류큐를
일본의
일부라고
인정해서가
아님.
상기
장제스의
“중국
속령
구분법”은
전통적인
조공
시스템과
깊은
연관이
있고,
이는
“일본의
지배권을
배제했음”
(327).
> 미국과
중국의
류큐
공동
위탁관리는
“전후
국제관계와
지역
내
힘의
균형에
착안.”
100% 민족국가
모델
혹은
전통적
모델에만
의존한
것이
아님.
> “장제스는
[중국
속령들과의]
이런
관계를
이
국가들이
독립과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도덕적
의무로
보았지,
주권
관계로는
보지
않았다…이
점에서
장제스의
입장은
영국이
아시아에서
식민주의
체제를
유지하려고
애썼던
태도와
선명히
대조된다.”
(327) …정말???
게다가
330-331쪽에는
조선독립에
있어서
장제스가
이러한
“도덕적”
이유
때문에
엄청
힘을
썼다고
하는데..
10. 류큐의 애매성과 정치적 선택
> “가장
강력한
비판은
현지의
투쟁과
전
지구적
관계를
종합하는
능력에서
온다.”
(341)
> 류쿠의
사회/정치운동이
추구하고자
하는
목적의
애매성—미군의
군사점령이
가져온
실업/취업의
문제,
류큐의
독립문제
(혹은
일본의
일부로써
남되
민족국가로써의
독립이
아닌,
다른
형태의
자주성을
추구하느냐?)
등등.
“자주적인
새로운
정치
형식
추구.”
> 류큐
사회운동가들의
특징:
자신들이
처한
정치적
상황에
대한
가변적이고
전략적
대처
(일방성
배제),
추상적인
담론보다는
구체적인
지향/목표/구호
추구,
“구체적인
권력관계
속에서의
문제제기”
(343), 비교조적이고
민첩한
투쟁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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