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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일본정치사, 오카 요시타케 지음 | 장인성 옮김 | 소화 | 1996년

근대일본정치사(한림신서일본학총서 9) 오카 요시타케  지음  |   장인성  옮김  |   소화   |   1996년  책소개 이 책이 속한 분야 인문  > 인문교양문고  > 인문교양문고기타 역사/문화  > 동양사  > 일본사  > 일본근현대사 원제 : 現代日本小史(政治史)) 일본 정치사에 대한 명저, 이 책은 무미건조한 사건 위주의 정치사 서술방식을 지양하고 민족독립과 내셔널리즘의 관점에서 근대 일본 정치의 본질을 밝혀 준다. 우리는 이 책을 통해 메이지유신이 민족 혁명으로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근대 일본이 서구 열강이라는 외세에 대항하여 어떠한 주체적 노력을 기울였는지 알 수 있다.  목차 001. 민족혁명으로서의 메이지(명치)유신 002. 신정부 003. 입헌정의 도입 004. 두차례의 전쟁 005. 완만한 전환 006. 정당정치에 대한 환멸 007. 파국의 길 008. 에필로그 

일본의 정치경제 연속과 단절 - 진창수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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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일본의 정치경제 연속과 단절> - 진창수 (2009) [연구] Research 2014.09.09 01:11 일본의 정치경제 저자 진창수 지음 출판사 한울아카데미 | 2009-03-16 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1990년대 후반부터 일본은 꿈틀대기 시작한다. 55년 동안 이... *** <목차> 제 1 부 일본 정치의 연구 제1장 전후 일본에서의 일본 정치연구의 한 단면? 이념에서 실증으로 제 2 부 일본 국내정치의 개혁 제2장 1990년대 이후의 일본 정치 제3장 장기불황의 정치경제?1990년대 일본을 중심으로 제4장 일본 정당정치의 변동과 정책 변화?2001년 성청개혁을 중심으로 제5장 일본 금융개혁?정책 변화의 정치적 요인 제 3 부 일본 외교정책의 변화 제6장 동북아 영토 분쟁의 일본 국내정치적 조건 제7장 일본 엔 국제화정책 변화의 정치적 요인 제8장 일본의 동아시아정책 변화?아시아로의 복귀 제 4 부 한반도정책 제9장 북핵문제에 대한 일본의 입장과 전략 제10장 전략적 한일 관계를 위한 제언  *** 이 책은 저자가 쓴 일본 정치경제의 개혁과 변화에 대한 논문들을 수정 및 재편집하여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이 중 중요한 부분들을 발췌해보았다. 제1부 일본 정치의 연구 제1장 전후 일본에서의 일본 정치연구의 한 단면? 이념에서 실증으로 제1장에선 일본 정치연구 경향이 크게 3 가지 시기-연구경향으로 나뉘어 개괄적으로 정리되어 있다: 1) 전후 초기의 일본의 후진적 정치질서를 강조한 마루야마 마사오의 초현실주의적 연구 중심 (이후 관료지배론으로 발전); 2) 1980년대 – 일본형 다원주의론 중심 (관료지배론의 기본적 가정 부정); 3) 신제도주의론 중심 (역사적 제도주의론과 합리적선택론) 1)     마루야마 마사오 – 초현실주의와 관료지배론 ...

만주의 중국인과 조선인의 관계를 다룬 단편소설들

http://211.111.219.13/common/popup/printPopup/print_Paper.aspx?PaperId=2458515 만주의 중국인과 조선인의 관계를 다룬 단편소설들 작성자 : 노이에자이트      작성일 : 2008년 12월 15일   만주를 배경으로 한 작품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품은 한국인이라면 안수길의 <북간도>일 것입니다.하지만 이 방대한 작품에 만주사변(1931년) 이후 이야기는 불과 10여 쪽이며 바로 소설은 끝납니다.주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벽두가 이야기의 대부분이죠.만주국 자체를 다룬 소설은 역시 조흔파 <만주국>외엔 본격장편이 없습니다.요즘엔 만주에 대한 학술 서적이 꽤 나오고 있고 특히 한석정 씨 같은 경우는 만주국을 전공했으니 한 번들 보시기 바랍니다.단편은  만주를 배경으로 한 소설들이 꽤 있지요.여기선 중국인들과 조선인의 갈등을 다룬 두 편과 평화롭게 협력하는 작품 한 편을 소개할까 합니다.   최서해<홍염>(1926년 작)-최서해는 계급갈등을 그린 초창기 경향파라고 해야겠지요.이 작품은 중국인 지주와 조선인 소작농 이야기입니다.중국인은 되놈이라고 해서 여기선 아주 몹쓸 영감 지주가 한 명 등장합니다.소작농인 문서방은 이 중국지주에게 빚이 있는데 결국 빚을 못갚아 17살 먹은 딸을 뺏기고 맙니다.부자집 횡포에 많이 보이는 이야기 구조이지요.딸이 되놈에게 잡혀 갔다고 문서방 마누라는 실성하더니 결국 죽고 맙니다.그 되놈 영감은 딸을 뺏고 난 다음 친정부모도 못 만나게 합니다.눈이 뒤집힌 문서방은 그 놈 집에 불을 지르고 기다리다가 그 영감을 도끼로 죽이고 딸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이 소설 집필하던 시기는 이른바 미쓰야 협약(1925년)이라고 해서 일본과 장작림 군벌이 조선독립운동가들을 단속하는 밀약을 맺었던 시기라서 이래저래 어지러웠던 때.중국에서는 중국인들이 조선인을...

만주영화협회와 조선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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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  1901~1945년의 한국영화사를 되짚다 김려실  지음  |   삼인   |   2006년 일본 영화와 내셔널리즘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04 김려실  지음  |   책세상   |   2005년 09월 15일 출간 문화냉전과 아시아  : 냉전 연구를 탈중심화하기 [양장] 기시 도시히코  ,  쓰치야 유카 (엮음)  지음   김려실   옮김   소명출판   2012년 06월 만주영화협회와 조선영화 2011 l 기획 및 발간 한국영상자료원 지금껏 그 전모가 잘 알려지지 않았던 ‘만주영화협회’의 탄생과 활동, 몰락의 과정을 보여주는 책! ‘동북아 현대사의 블랙박스’라 불릴 정도로 파악이 곤란했던 만주국에서 1937년 설립된 이 영화협회는 600여 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만주에서의 영화배급과 순회영사를 담당했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고려영화사와의 합작 <복지만리>를 제작했으며 대동아공영권을 겨냥해 기획된 아이돌 스타, 이향란을 배출해낸 국제적인 곳이었다. 부산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김려실 필자는 꼼꼼한 자료 조사와 해석, 군더더기 없는 스토리텔링으로 당시의 현장을 복원해낸다. 차례 서문 Ⅰ. 만주, 기억, 영화 1. 이미지로 존재하는 만주 2. 만주영화협회의 재발견 Ⅱ. 동양 최대의 영화공장 1. 만영의 초기 활동 2. 아마카스 이사장 시대 3. 이향란, ‘대동아공영권의 아이돌’ Ⅲ. 만주국과 조선영화 1. 만영이 수입한 조선영화 2. 조만 제휴영화 <복지만리> 3.《만선일보》의 순회영사 나오며 부록 1 만주국의 영화관 통계 부록 2 현존하는 만영영화 목록 저자 소개 김려실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지은 책으로는 『일본영화와 내셔널리즘』, 『투사하는 제국 투영하는 식민지』, 『文化冷?の時代─...

20세기 초 동북아에서 가장 모던한 곳은 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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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30/2011063002612.html?Dep0=twitter&d=2011063002612 20세기 초 동북아에서 가장 모던한 곳은 만주? 전병근 기자 글자 작게 100자평 0 페이스북 2 트위터 더보기 입력 : 2011.07.01 03:01 국내외 학계 '만주 재조명' 열풍 조선인 등 50여 민족 모이고, 시가지·수세식 화장실 갖춰 동북공정·北경제특구 중심… 통일 후 지리적 중요성 커져 만주(滿洲)가 다시 깨어나고 있다. 1세기 전 동아시아 격동의 진원지였던 이곳에 대한 각국의 전략적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국내 학계에서도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5월 13일 만주학회가 '만보산 사건' 80주년 학술회의를 연 데 이어 다음 달 서울대 규장각은 '만주국의 기억과 현재'를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연다. 9월에는 '만주사변과 만주국' 특집 국제학술회의도 서울에서 열린다. 연구서도 쏟아지고 있다. 최근 출간된 '만주영화협회와 조선영화'를 비롯해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 '만주몽골은 조선인의 땅이었다' '만주지역한인유적답사기' '만주국의 초상' '만주를 가다' 등 최근 3년 사이 나온 책만 10권이 넘는다.  동북아역사재단 은 올 초 동북아역사논총에서 '만주국 시기 인구 이동'을 특집으로 다룬 데 이어 최근 '이민과 개발: 한·중·일 3국 인의 만주 이주 역사'를 냈다. ◆ 변방에서 학계 담론의 중심으로 만주는 여태까지 우리에게 아련한 '기억의 땅'이었다. 한때 고조선·고구려·발해에 이르는 선조의 터전이었지만 근대 이후 그곳은 '항일투쟁의 성지'로만 전해져왔다. 하지만 이제 학계는 그 이상의 '복합...

만주국, 어떻게 탄생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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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주국, 어떻게 탄생했나? [中國歷史]   2015/11/10 13:11 김 혁 “대학은 졸업했지만….” 1930년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취직자리가 없어서 절망했던 일본 젊은이들의 자조 섞인 푸념이었다(지금의 대한민국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1929년 불어 닥친 대공황의 여파로 일본엔 실업자가 넘쳐났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일본에 위기가 닥쳤다. 단순히 경제위기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었다. 대공황으로 일본은 또다시 ‘전쟁국가’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大正 デモクラシー)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발전시키고,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군비를 삭감하고, 이렇게 확보한 재정으로 산업발전에 투자하고, 악화일로를 걸었던 해외 열강들과의 화해 분위기를 경제협력으로 이끌어 일본의 발전을 이룩한다’는 이상적인 구도, 이 모든 생각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일본은 전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군(軍), 움직이다 1930년 말 만주에 체류하는 일본인의 수는 22만 8,700명에 이르렀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일본인이 만주에 진출한 데에는 ‘국방사상 보급 운동’이라는 일본군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당시 일본 육군은 농촌을 중심으로 국방사상(‘만주 설명회’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겠지만)을 보급했다. “만주에는 기름진 평야가 널려있다. 이게 원래는 중국 땅이지만, 당장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이걸 그냥 포기해? 본토에서 굶어 죽느니 만주 가서 인간답게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 “만주는 우리 장병 20만의 피로 획득해 얻은 곳이다.” 일본 군부는 대공황으로 시작된 경제위기의 탈출구와 인구과잉으로 신음하고 있는 인구의 배출구로 만주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만주의 완전한 확보’라는 군사적인 목적도 있었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만주로 가는 발판을 만들고, 만주를 확실히 다져 소련 침략의 거점으로 만든다. 이게 일본 육군의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조급함도 ...

고바야시 마사키의 <인간의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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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바야시 마사키의 <인간의 조건>, 개인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는가.    *한국영상자료원  /  영화광-Cinephile 2011.07.07. 10:53 http://blog.naver.com/gozorba/20132179098 번역하기   전용뷰어 보기 이 포스트를 보낸곳  ( 1 )   <인간의 조건 1>은 1부와 2부를 합쳐서 러닝타임이 206분입니다. 전편을 다 보려면 아직도 갈 길이 멉니다. 영화 한 편을 보는 게 꼭 마라톤을 뛰는 것 같습니다. 잠깐 인터미션을 준 후 이어지는 것은 2부 ‘격노’입니다. 이제 노호령 광산에서 본격적인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1부 ‘순애’는 등장인물들을 소개하고 캐릭터를 구축해나가는 과정에 불과합니다. 2부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노호령에서는 보기 드물게 쾌청한 날씨. 가지와 미치코는 첫 휴가를 받아서 도시로 나갑니다. 미치코의 꿈은 단순합니다. 옛 동료를 만나서 수다를 떨고, 남편과 같이 싱싱한 사과를 먹고 싶을 뿐입니다. 마을에서 나가려는 순간 직원 하나가 다급하게 달려옵니다. 또 탈옥 사건이 터진 것입니다. 제발 모른 척 하고 휴가를 가자는 미치코의 애원을 거절하고 가지는 광산으로 돌아갑니다. 가지를 도우면서 참을 만큼 참던 오키시마도 특수공인 몇 명을 때립니다. 가지는 오키시마를 말리고, 앞으로 모든 책임은 자기가 다 지겠다고 말합니다. 소장에게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탈옥 음모를 꾸민 주모자인 후루야가 소장에게 다가가서 가지의 행동이 의심스럽다면서 가짜 탈옥 계획을 세운 후 한 번 지켜보자고 합니다. 오키시마는 첸에게 다시 한 번 변전소에 가서 전기를 내리라고 협박하는 조선인을 때립니다. 후루야가 병원에 입원한 조선인을 찾아옵니다. 첸은 이런 모든 상황을 무기력하게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는 함정에 빠졌고, 올가미...

도고 시게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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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고 시게노리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도고 시게노리 기본 정보 국적   일본 제국 출생 1882년 12월 10일 일본  사쓰마 번  나에시로가와 촌 사망 1950년 7월 23일 (67세) 스가모 형무소 학력 도쿄제국대학 졸업생 직업 외교관 배우자 에디타 데 랄란데 의원 선수 선 의원 도고 시게노리 ( 일본어 :   東郷 茂徳 とうごう しげのり ,  1882년   12월 10일  ~  1950년   7월 23일 ) 는  일본 제국 의 외교관이자  정치인 으로,  태평양 전쟁  전쟁 당시  일본 의 외무 대신이었다. A급 전범 중 유일한 한국인이다. 본명은 조선식 이름인  박무덕 (朴茂德). [1] '조선인 핏줄'이라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독일 대사, 소련 대사를 거쳐 외무대신을 두 번 지냈다. [2]   제1차 세계 대전  직전 정한론을 주장하였고,  1943년 의  포츠담 회담  때는 일왕  히로히토 에게 회담 내용을 수용할 것을 건의하기도 했다. 태평양전쟁 패전 후 전범으로 옥살이를 하던 중 병사했다. 생애 [ 편집 ] 초기 이력 [ 편집 ] 일본의 역사가  하기하라 노부토시 (萩原延壽)의 기록에 따르면 도고 시게노리는  1882년   12월 10일   사쓰마 번  나에시로가와촌(苗代川村)에서 한국계 일본인인 박수승(朴壽勝)과 역시 한국계 일본인인 박토메 사이에서 태어났다. 도고 시게노리는  임진왜란  당시  시마즈 요시히로 (島津義弘)의 부대에 연행되어 일본에 끌려온 도공  박평의 의 후예이다. 이들은 사쓰마 번 (현재  가고시마 현 )의 나에시로가와(苗代川)에 정착하여 대대로 도자기업에 종사했으며, 조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