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초 동북아에서 가장 모던한 곳은 만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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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 동북아에서 가장 모던한 곳은 만주?

입력 : 2011.07.01 03:01

국내외 학계 '만주 재조명' 열풍
조선인 등 50여 민족 모이고, 시가지·수세식 화장실 갖춰
동북공정·北경제특구 중심… 통일 후 지리적 중요성 커져

만주(滿洲)가 다시 깨어나고 있다. 1세기 전 동아시아 격동의 진원지였던 이곳에 대한 각국의 전략적 관심이 고조된 가운데 국내 학계에서도 뜨거운 화두로 떠올랐다.

지난 5월 13일 만주학회가 '만보산 사건' 80주년 학술회의를 연 데 이어 다음 달 서울대 규장각은 '만주국의 기억과 현재'를 주제로 국제 심포지엄을 연다. 9월에는 '만주사변과 만주국' 특집 국제학술회의도 서울에서 열린다. 연구서도 쏟아지고 있다. 최근 출간된 '만주영화협회와 조선영화'를 비롯해 '만주국의 탄생과 유산' '만주몽골은 조선인의 땅이었다' '만주지역한인유적답사기' '만주국의 초상' '만주를 가다' 등 최근 3년 사이 나온 책만 10권이 넘는다. 동북아역사재단은 올 초 동북아역사논총에서 '만주국 시기 인구 이동'을 특집으로 다룬 데 이어 최근 '이민과 개발: 한·중·일 3국 인의 만주 이주 역사'를 냈다.
변방에서 학계 담론의 중심으로

만주는 여태까지 우리에게 아련한 '기억의 땅'이었다. 한때 고조선·고구려·발해에 이르는 선조의 터전이었지만 근대 이후 그곳은 '항일투쟁의 성지'로만 전해져왔다. 하지만 이제 학계는 그 이상의 '복합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만주의 '주변성'과 '혼융성'은 여러 학자를 유인하는 요인이다. 19세기 만주에는 한족·만주족·러시아·조선인·일본인·몽고인들 외에 프랑스·독일·폴란드·우크라이나·타타르 등 50개가 넘는 민족, 45개 언어가 혼재했다.

일본이 1906년 설립한 남만주 철도 주식회사의 특급열차 아시아호. 증기기관차로는 이례적인 유선형이었던 아시아호는 최고 시속 134㎞로 만주를 누볐다. /동북아역사재단 제공
윤휘탁 한경대 교수는 "다양한 민족을 빨아들인 블랙홀이자 욕망이 중첩된 공간이었다"고 말한다. 1930년대 조선에서는 대대적인 '만주행 엑소더스'가 있었다. 살 길을 찾는 개척이민과 일제의 정책이민이 겹쳤다. 1940년 이곳엔 일본인이 82만명, 조선인이 145만명 살았다. 광복 무렵 조선인은 216만명에 달했다.

지식·예술인도 만주행이 유행이었다. 자국 활동에 한계를 느낀 동아시아 문인들은 한데 모여 '만주문학'이란 독창적 장르를 낳기도 했다. 한국 영화의 선구자인 나운규·윤봉춘도 만주에서 자랐고, 유치환·이태준·한설야 등이 기행문 등을 남겼다. 조선과 일본에서 만들어진 만주소재 가요만 해도 500곡(조선 110곡, 일본 400곡)이 넘었다. 부산~만주~베이징을 잇는 특급열차가 탄환처럼 달린 곳이기도 하다.

한석정 동아대 교수는 "1930년대 200만명에 이른 만주 조선인들의 숱한 사연이 담긴 현대사의 블랙박스가 이제 열리는 것"이라고 했다. 최근 조선족과 탈북자 문제도 '만주 관심 부활'에 한몫했다. 20세기 동아시아의 디아스포라(diaspora·희랍어로'이산')로 부각되면서, 만주 연구는 일국사 차원을 넘어 국제적 학제적(學際的) 성격을 띠는 추세다.

모더니즘·근대국가 실험장?
일제의 괴뢰국이자 실험국이었던 만주국(1932~1945)에는 당시 적지 않은 조선인이 그곳 관리·장교로 일했다. 최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 등의 만주 체험이 한국 국가발전에 어떻게 투영됐는지 밝히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만주국의 수도 신징(新京·현재의 창춘)은 시가지, 상·하수도, 수세식 화장실 등에서 근대의 첨단을 달렸다고 한석정 동아대 교수는 말한다. 만주국은 총력전 체제, 통제 경제, 산업, 건축, 도시계획, 박물관 경영, 영화, 음악, 체육 등에서 일본 근대의 실험장이었다. 만주국의 많은 부분이 남북한에 전달됐다. 국민의례나 행진, 강연, 영화 상영, 운동회, 전단, 표어 같은 광복 후 한국 사회에도 너무나 익숙한 행사들이 만주국 시대에 행해지던 것들이었다.

통일 대비 전략적 관심 필요

최근에는 해외 지정학자들도 만주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의 국제전략가인 조지 프리드먼은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난 늘 한국이 통일됐을 때 만주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중국은 내부를 통제하기에 급급할 것이다."

실제 만주는 현재 중국이 추진하는 동북공정의 현장이자 북·중 국경 경제특구 지대다. 중국은 최근 '창지투(長吉圖) 계획'을 추진 중이다. 지린성 수도인 창춘과 옛 수도인 지린, 두만강변 투먼(圖們)을 연결하는 공업지대 개발 계획이다. 우리로서는 오래전부터 구상 단계에만 머물고 있는 시베리아 횡단철도와 한반도 종단철도가 만날 지점이 바로 만주다.

동북아역사재단의 노기식 역사연구실장은 "과거부터 한반도에 인접한 만주는 숙명적인 지역이었다. 이제는 역사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과 미래의 문제"라며 "통일 이후를 생각하면 학계뿐만 아니라 정·재계도 동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지정학적 중요성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만주·간도·동북3성
본래 만주는 이 지역 민족을 일컫는 이름이었다. 후금을 세운 누르하치(청태종)가 국명을 만주(滿珠)로 바꾸고, 민족명도 여진에서 '만주(滿洲)'로 바꾸면서 역사 속에 처음 등장했다. 중국은 이 지역을 '동북 3성'이라 부른다. 랴오닝(遼寧)·지린(吉林)·헤이룽장(黑龍江) 3개 성이다. 우리에겐 간도(間島)란 이름으로도 친숙하다. 19세기 후반 조선인들이 두만강 이북으로 넘어가 농사짓기 시작하면서 '사잇섬'이란 뜻으로 썼다. 현재 이 지역에 200만 동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6/30/201106300261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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