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 어떻게 탄생했나? [中國歷史] 2015/11/10 13:11 김 혁 “대학은 졸업했지만….” 1930년대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말이다. 대학은 졸업했지만, 취직자리가 없어서 절망했던 일본 젊은이들의 자조 섞인 푸념이었다(지금의 대한민국과 비슷하다고 해야 할까?). 1929년 불어 닥친 대공황의 여파로 일본엔 실업자가 넘쳐났고, 사람들은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일본에 위기가 닥쳤다. 단순히 경제위기로만 바라볼 문제가 아니었다. 대공황으로 일본은 또다시 ‘전쟁국가’로 돌아가려 하고 있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大正 デモクラシー)를 바탕으로 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발전시키고,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군비를 삭감하고, 이렇게 확보한 재정으로 산업발전에 투자하고, 악화일로를 걸었던 해외 열강들과의 화해 분위기를 경제협력으로 이끌어 일본의 발전을 이룩한다’는 이상적인 구도, 이 모든 생각과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게 됐다. 일본은 전쟁으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군(軍), 움직이다 1930년 말 만주에 체류하는 일본인의 수는 22만 8,700명에 이르렀다. 이렇게 많은 숫자의 일본인이 만주에 진출한 데에는 ‘국방사상 보급 운동’이라는 일본군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당시 일본 육군은 농촌을 중심으로 국방사상(‘만주 설명회’라는 이름이 더 어울리겠지만)을 보급했다. “만주에는 기름진 평야가 널려있다. 이게 원래는 중국 땅이지만, 당장 우리가 죽게 생겼는데 이걸 그냥 포기해? 본토에서 굶어 죽느니 만주 가서 인간답게 살아봐야 하지 않겠어?” “만주는 우리 장병 20만의 피로 획득해 얻은 곳이다.” 일본 군부는 대공황으로 시작된 경제위기의 탈출구와 인구과잉으로 신음하고 있는 인구의 배출구로 만주를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여기에는 ‘만주의 완전한 확보’라는 군사적인 목적도 있었다.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어 만주로 가는 발판을 만들고, 만주를 확실히 다져 소련 침략의 거점으로 만든다. 이게 일본 육군의 생각이었다. 여기에는 조급함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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