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속에 해문리 이야기|해문리의 이야기    http://cafe.daum.net/goansfl/est1/48
돗가비(최성욱)|조회 162|추천 0|2012.02.28. 19:18http://cafe.daum.net/goansfl/est1/48 




(조선지도 - 마도면 일대)


마도면을 포함한 화성지역은 일찍이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고, 신석기시대를 경유하여 청동기시대 내지 초기 철기시대에는 마한(馬韓) 54국에 속하는 몇 개의 소국(小國)들이 터잡아왔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과 『후한서』 동이전 한(韓) 조에 전하는 마한 54국 가운데 수원지방과 관련 있는 소국은 원양국(爰襄國)ㆍ상외국(桑外國)ㆍ모수국(牟水國) 등이다. 이병도(李丙燾)의 『한국고대사연구』에 의하면 원양국은 현 화성군 남양면과 비봉면 지역, 모수국은 현 수원시 지역, 상외국은 현 화성시 우정면ㆍ장안면 일대의 지역으로 비정한 바 있다.



마도면은 경기도 화성시의 서쪽에 위치한 면이다. 남쪽 끝에는 화성호(華城湖)가 있다. 10개 법정리를 관할한다. 조선말 남양군(南陽郡) 관할의 쌍수리면(雙守里面)과 마도면(麻道面)이 1914년 3월1일 일제의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해 합쳐져 마도면이라 하고 수원군에 소속되었다. 이후 1949년에 수원군이 시로 승격됨에 따라 화성군 마도면으로 되었고 2001년 3월 21일 화성시 승격에 따라 화성시 마도면이 되었다.



쌍수리면은 지금의 마도면 북쪽 지역, 즉 송정리· 두곡리·석교리 일대를 관할하였고, 옛 마도면은 지금의 마도면 남쪽 지역, 즉 슬항리·해문리 ·쌍송리·고모리 일대를 각각 관할하였다. 쌍수리면과 마도면의 명칭은 『여지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지도로는 
『여지대전도』에 처음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에 의하면 당시 마도면은 호수가 1,711호로 대부도(大阜島)를 제외하고 옛 남양에서 가장 큰 면이었다. 특히 이곳에 있는 해문역(海門驛, 현재의 해문리)은 『세종실록지리지』에도 기록될 정도로 일찍부터 중요한 곳이었다. 고지도들에서도 해문을 대부분 표기하고 있는데, 다만 해문의 위치가 현재보다 상당히 위쪽에 있는 것으로 표시하고 있다. 이는 당시 해문 일대는 양쪽에 바닷물이 들어와 읍치에서 마도뿐만 아니라 서부지역으로 갈 때 이곳을 거쳐 가야만 하였기 때문으로 보인다.



마도(麻道)라는 면 이름은 중국 사신이 삼베옷을 입고 이 지역을 지나갔다는 유래에서 '삼(麻)'자와 '길(道)'자를 따온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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