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파 (도조 vs 간지) vs 황도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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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전쟁 발발 이전 시점에서 제가 생각해본 가상역사의 분기는 두군데입니다. 하나는 통제파와 황도파의 대립, 다른 하나는 통제파 내부에서의 도조 히데키와 이시와라 칸지의 대립. 실제 역사에서는 통제파 내의 도조 파벌이 승리합니다만, 만약 거기에서 다른 결과가 나왔다면?
통제파는 뭐고 황도파는 또 뭐냐?라는 분들을 위해 간략하게 설명을 드리자면...통제파는 위에서 적었듯이 도조 히데키 등의 군부 내 강경파들입니다. 거기에 대립하는 황도파는(복숭아가 아닙니다.) 이름 그대로 무력이 아닌 황도정치(왕도정치죠, 그냥. 자기네가 제국이라고 황도정치라고 불렀습니다.)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는 파벌이었습니다. 이쪽의 주장을 간략하게 말하자면 "전쟁하지 말자."
군국주의 시대의 군인들 답지 않게 황도파는 전쟁이나 군비확장에 비판적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황도파의 핵심 인물들이 1차대전때 관전무관으로 유럽에 파견됐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열강이 전쟁터에 인적, 물적 자원을 퍼붓는 것을 본 황도파 군인들의 감상은 "일본이 저런 거 따라하다가는 당장 망한다."
그들은 일본은 미래전을 수행할 능력이 안 되는 나라이니, 어떻게 해서는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제국군이 수행하는 전쟁은 현재의 영토를 수비하는 목적으로만 한정되어야 하며, 전쟁을 하게 되더라도 최대한 단기결전으로 이끌어 국력의 소모를 막아야 한다는 게 황도파의 사상이었습니다.
일본군의 전쟁요강에서 장기 병참계획을 빼버린 게 바로 황도파인데, 후대에 비웃음거리가 되기는 했지만 당시 황도파에게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장기 병참을 생각해야 할 정도로 전쟁이 길어지면 그것은 곧 패전을 의미하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라 안에 물자 자체가 없는데 물자 조달 계획을 세우서 뭐하나?"
덤으로, 황도파는 "폐하의 백성을 굶주리게 하는 건 폐하에 대한 불충이다."라는 생각으로 대규모 군비 증강에도 반대했습니다.(그런 반면 입헌군주제를 폐지하고 천황이 직접 통치를 해야 한다는 황당한 주장도 했습니다.)
어쨌거나 황도파는 통제파에게 패했고, 통제파는 만주사변, 중일전쟁 등을 일으킵니다만...통제파 내에도 두 파벌이 대립하고 있었습니다. 도조 히데키와 이사와라 칸지의 파벌이었지요. 도조 히데키야 설명이 필요 없는 인물이고, 이시와라 칸지도 나름 유명하지요. 육군 내에서 가장 똑똑한(그리고 약간 맛이 간) 인물이라는 게 이시와라 칸지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도조의 파벌을 상징하는 게 바로 정신력 드립이지요. 물질적인 면에서 서구 열강에 뒤쳐지더라도 정신력으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할 수 있다는 개드립. 반면에 현실주의자인지 몽상가인지 구분이 안 가는 이시와라는 철저하게 물질적인 면을 보충한 뒤에 서구 열강과의 전쟁을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시와라가 주장한 준비기간은 최소 30년.
30년간에 걸쳐 만주의 광대한 영토와 물적, 인적 자원을 이용해 만주를 거대한 산업단지로 만든다는 게 이시와라의 구상이었습니다. 그걸 위해 이시와라는 만주사변을 일으키고 괴뢰국가 만주국을 세웠지요. 1960년대나 70년대까지 시간을 들여 광활한 만주벌판을 공장으로 가득 채워 일본을 거대 공업국가로 만들고 나면 미국과도 싸워 이길 수 있다는 게 이시와라의 생각이었습니다.
일견 허무맹랑한 주장처럼 들리기도 하지만...우리나라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시작하고 나서 OECD 회원국 되는 데까지 35년이 안 걸린 점이나 등소평의 개혁개방으로부터 30년 뒤의 중국을 생각해보면 웃어 넘길 일도 아니지요.
그러나 이시와라가 파벌싸움에서 밀려나고, 도조 파벌이 중일전쟁을 일으키면서 이시와라의 구상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 후의 일본은 지옥문을 향한 외길을 착실하게 전진하게 되고...
만약에 황도파가 승리하고 일본이 현실에 안주하는 소극적인 대외정책을 추진했다면? 이시와라파가 주도권을 잡고 수십년간 힘을 키웠다면? 그렇다면 그 후의 역사는 어떻게 달라졌을지...
그런데 둘 중 어느 쪽이건 우리나라 광복은 물건너 가네요. 결론은 저놈들이 최악의 수를 선택한 덕분에 광복이 됐다는 건가... 중일전쟁을 안 일으켰다면 삼국동맹을 맺을 일도 없었을 테고...전쟁 없이 국가가 안정되면 수그러들었던 민권운동이 도로 생기를 얻을 가능성도 조금 있고, 그러면 잠시 유행했던 조선 자치론이 도로 떠오르는 정도가 최대한이려나?
(태평양전쟁의 피해나 전후의 분단을 생각해보면 "니들이 바보라서 다행이야."라고 하기도 그렇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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