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주학파(常州學派)

상주학파(常州學派)
청대 금문경학의 계몽자인 장존여는 『춘추정사(春秋正辭)』를 지어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의 미언대의(微言大義)는 후한(後漢) 이하에는 있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유봉록은 그것을 이어 『춘추공양경전하씨석례(春秋公羊經傳何氏釋例)』를 저술하여 고문경학(古文經學)을 의심하고 전한(前漢) 시대 공양학(公羊學) 부활의 기치를 올렸다. 이들은 『춘추공양전』의 경의(經義)에 입각하여 공자(孔子)를 소왕(素王)으로 보았고, 경서(經書)는 공자가 소왕의 위치에서 천하를 다스리기위해 저술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고문경서(古文經書)의 진위를 의심하였다. 이들은 단순한 경서에 대한 훈고학적 연구에서 벗어나 『춘추공양전』의 미언대의에 입각하여 당시의 사회 현실에 대한 정치적 견해를표명하기도 하였다. 특히 아편전쟁을 전후로 해서 유봉록의 문인인 공자진과 위원(魏源)은 각각 『서역치행성의(西域置行省議)』와 『해국도지(海國圖志)』를 저술하여 당시 현실과 밀접한 변혁의 사상을 표명하였다. 광서(光緖) 연간에 요평(廖平)은 금문학(今文學)과 고문학(古文學)의 차이를 분석하면서 고문학은 위조된 것이고 금문학은 공자가 스스로 새로운 제도를 개창한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그 후 요평의 문하인 강유위는 금문학의 탁고개제(托古改制) 사상을 무술변법(戊戌變法)의 이론적 근거로 삼았다. 강유위가 1891년에 발표한 『신학위경고(신학위경고)』는 금문경학파의 고문경학에 대한 반대 논의를 총괄한 전문서적이다. 그는 여기서 청대 학자들이 존숭한 고문경서는 모두 한나라 때 유흠(劉歆)이 위조한 것이며 공자의 진전이 아니라고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은 전대에 비해 훨씬 대담하고 철저하게 고문경서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상주학파는 당시의 번쇄한 훈고학(訓學)에 반대하여 미언대의로써 정치를 논하고 아울러 연구의 범위를 경학에 국한시키지 않고 역사학·지리학 등으로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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